"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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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ure Reading

오늘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12절 까지의 말씀입니다. 선생님들께서 한 절, 제가 한 절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5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Revision

함께 계속해서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의 말씀 중 제일 첫번째 내용인 ‘팔복'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매주 말씀드리는 내용이라 이제는 좀 지겨우시겠지만, 나중에라도 ‘팔복' 말씀을 읽을 때, 또 누군가 ‘팔복'에 대해 물어볼 때 자신있게 대답해 줄 수 있게 한번 또 간단히 복습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절에서 ‘산에 올라가’의 표현은 구약시대의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가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예수님께서 앞으로 말하실 것들이 모세가 받은 계명처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나아가 ‘새 계명' 또는 ‘완성된 계명’임을 의미합니다.
‘복이 있나니'의 원어는 헬라어로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입니다. 이 원어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기뻐하라'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각 절이 묘사하는 고난의 모습과 복은 살면서 겪게되는 특정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팔복의 어려움들이 따른 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의미로, ‘팔복’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고 도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앞서 살펴보았던 3-6절에 나오는 처음 4가지의 복은 하나님께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가난한 심령, 애통, 등)이 기뻐할 복에 대한 내용이라면, 7-9절에서 소개되는 3가지의 복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긍휼, 청결한 마음, 화평)이 가져오는 복된 삶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주해와 해석

먼저 본문에서 말하는 ‘마음'은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속 생각, 감정과 같은 것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마음(heart, καρδία)’은 사람의 외형, 육체를 제외한 내면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라 함은 감정, 생각, 현재의 내적 상태, 도덕성 등을 말합니다. 즉, ‘마음이 청결한 자'는 예수를 따름으로 누리는 죄로부터의 자유,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청결'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청결(pure, καθαρός)’이라는 단어를 마태복음 전체를 통틀어서 단 3번 밖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마태가 신중하게 사용한 단어라는 의미겠지요? ‘청결'은 말그대로 깨끗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만 마태가 의미하는 청결의 반대말은 ‘더러움'이 아닌 ‘부정함'입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지요. 반대로 ‘청결'하다면, 말씀대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청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바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팔복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럴 때, 이 세상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을 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의미는 우리가 언젠가 각자의 삶의 여정을 마치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그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너무 감사한 일이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특별히 대부분의 종교들이 자신들이 죽은 이후의 삶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사는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영광의 삶에 동참하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사실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두번째 의미가 더 마음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의 두번째 의미는 바로, 우리 각자의 삶에 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즉, 함께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한번 문득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갈 때 까지 그냥 알아서 살라고 두시지 않고, 언제나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또 그 인도하심을 깨닫게 하시는 것에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자의 삶의 감사의 순간들, 그 순간들은 과거가 되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또 현재의 삶에서 보여주시는 감사함들..
함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는 정결한 마음을 가진 저와 선생님들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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